김덕훈: 물의 형태
CHAPTER II 2022. 3. 11 - 4. 23
CHAPTER II YARD 2022. 5. 12 - 6. 25
흑연 드로잉으로 다양한 소재를 세밀하게 묘사해 왔던 김덕훈은《물의 형태(The Shape of Water》라는 제목 아래 챕터투 레지던시 기간 동안 제작한 9종의 장미 연작을 선보인다. 주로, 정물화, 도시의 풍경, 인상적인 장면의 한 부분을 영화 혹은 항공 사진에서 자주 관찰되는 앵글을 차용하여 세밀하게 묘사해온 작가에게, 이번 전시는 일 년 여간 장미라는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고 그 변주에 고심해 온 그 간의 행적을 살펴보게 한다.
김덕훈이 사용하는 흑연은 지면에 가해지는 압력과 반복 횟수에 따라 옅은 회색으로부터 검은색까지의 분포한다. 작가는 이러한 회색 스펙트럼에 대한 오랜 경험치를 바탕으로 묘사 대상들이 서로 산포되지 않고, 마치 하나의 돌처럼 모노톤을 띄는 덩어리로 인식되도록 조성한다. 이는 작가에게 모놀리스(Monoliths)라고 이해된 것으로, 모든 사물은 하나의 암석과 같은 거대한 세계의 일부이자 존재론적으로 평등함을 뜻한다. 의도적인 기교의 억제와 균질성에 대한 집요한 추구 또한 이러한 시도에 힘을 보탠다. 표면에 균질하게 퍼져있는 펄프 입자의 미세한 돌기를 터치의 강약을 주며 세밀하게 다루어, 개별 이미지들의 입체감이 강조되는 동시에 각 요소 간의 유기적인 결합이 우선시 되도록 유도한다.
장미의 품종은 공식적으로 2만 5천 종 이상이 존재하며, 지금도 매년 200종 이상의 새로운 품종이 개발되고 있다. 김덕훈이 주목한 장미는 품종의 탄생 지와 색, 이형 요소 등 개별적인 특이 사항의 두드러짐보다는, 우리의 관념상에 존재하는 이데아적인 장미이자 그것의 표상에 대한 오마주에 가깝다. 즉, 화면 속 대상은 각각 다른 형태를 가진 9개 품종의 장미이지만, 화려한 잎과 꽃의 색이 완전히 배제된 모노톤의 자칫 딱딱해 보이는 연출 앞에서 단일 개체의 개별성은 여간 주목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작가는 그림에 작품의 소재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Can We Talk’ 나 ‘You Know Nothing’과 같은 작품명을 병치함으로써, 화면 속 묘사 대상이 필연적으로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연상케 하기 위한 부차적 요소임을 드러낸다. 장미 본연의 유기체적 물성이 가진 화려하지만 쉽게 변질되는 속성이 아닌, 문장과 개념으로 관념 세계에 지속시키고자 하는 이러한 장치는, 작가가 천착해온 모놀리스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