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목: 부재의 빛
챕터투는 최지목의 개인전 《부재의 빛(The Light of Absence)》을 2023년 6월 23일부터 8월 5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보편적인 시각예술 매체의 형태인 사각 틀과 고착된 형식에 저항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서 '레디메이드' 작업을 진행해왔던 작가는 독일 유학시절 초기에 흥미를 갖고 작업을 시도한 바 있는 '보는' 행위에 재주목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2년 챕터투 레지던시(Chapter II Residency) 입주 이후 주관적으로 지각한 빛의 잔상 형태와 강렬한 색감을 캔버스로 옮겨와 선보인다.
최지목(b.1981)은 수원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독일 무테지우스 예술학교(Muthesius Kunsthochschule)에서 순수미술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종영미술관(2022), 강 컨템포러리(2020), 캔 파운데이션(2019), Kunst & Co(2018), 오뉴월 이주헌(2017)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갤러리바톤(2023), 챕터투(2022), Neue Kunst Initiative(2019), 홀든 갤러리(2018), 아트스페이스 테트라(2017), 주독일한국문화원(2017)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최지목 작가노트–'부재(不在)의 빛' (2023)
이번 전시는 "회화는 시각예술이다"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 자체를 질문한다. 그림을 '본다'는 일은 감상자뿐 아니라 작업을 제작하는 창작자에게도 해당된다. 그림을 '보는' 행위는 망막 자체의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활동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이를 거의 의식하지 않으면서 예술로서의 보는 행위 자체를 향유한다. 보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번 전시의 주제는 그림을 '보는' 일에 관한 것이다.
나의 질문과 작업은 2007년 독일 유학시절 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당시 나는 그림을 보는 일로서 빛의 잔상에 흥미를 가지고 일련의 작업을 시도했다. 시각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대상이 어떻게 보이는지가 주된 관심사였고 눈으로 인식될 수 있는 다양한 현상들이 작업에 포함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양안시 현상과 같이 눈과 눈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교차되어 보이는 사물들, 응시하는 곳에 저절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그 외의 부분들은 흐려지는 현상, 특정한 조건에서 발생하는 여러 착시 현상들, 한 시도 가만있지 않는 눈의 움직임 등 눈과 시각 메커니즘을 통한 반응들이 내 작업의 주제로 사용되었다.
특히 나는 잔상 효과를 유심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잔상 효과는 학교에서 배워서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이를 회화적 대상으로 지각하면서 바라본 느낌은 크게 달랐다. 이는 망막과 신경계의 상호작용으로 생기는 시각 현상이 실존적인 빛의 가시적 물리 세계와 만나서 비로소 '본다'라는 경험으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나에게 새로운 차원의 이해와 인식을 가져다주었다.
강한 태양빛을 정면으로 응시한 후 눈을 감으면 어둠 속에서 잔상이 뚜렷이 남는다. 그리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약해지고 사라진다. 잔상이란 인간이 눈을 감고서 경험하는 시각신경 다발의 흥분작용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무언가를 보기 위해선 반드시 빛이 필요하고 빛을 통해 시공간을 인지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잔상은 어둠 속에서 비로소 현전한다. 우리의 신체적 감각은 다른 것을 말한다. 눈을 감은 채, 빛이 없는 어둠 속이라도 눈은 쉬지 않고 무언가를 보고 있고 지각하는 기능을 멈추지 않는다. 눈을 감은 상태의 어둠은 그저 보이지 않는 세계라 할 수 없다. 어둠은 생각과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상상을 형상화하기도 하며 잠재된 시각 현상과 가시적 추상 세계로 가득하다. 하나의 예로 빛을 보고 난 뒤 동형의 반대색이 보이는 음화적 잔상은 어둠 속에서도 발화하듯 빛을 내며 그 '부재하는 빛의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색채의 근원은 빛'이라는 이론에 반박하듯 빛에 대항하는 반대 색을 발화시키며 형형색색으로 변화를 거듭한다. 이러한 잔상들은 사진이나 다른 어떠한 형태의 기계장치로도 기록할 수 없다. 인터넷을 검색한다고 해 도 관련 이미지는 찾기 어렵다. 신체가 없는 인공지능이 이러한 신경계의 잔상을 구현할 수 없다는 점도 명백하다.
이번 작업은 어둠 속에서 지각한 잔상의 형태와 강렬한 색감을 캔버스에 옮겼다. 회화의 역사는 19세기 사진 기술의 발명으로 이에 대응하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오늘날은 인공지능의 등장으로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기계의 시대는 유기체적 신체를 가진 나에게 다시 붓을 드는 계기가 되었다. 캔버스에 포착된 빛의 잔상은 찰나의 지각된 시각적 현상을 기록한 것이며 다시금 자연과 몸이 함께 만 들어내는 생성과 소멸의 섭리를 함축한다. '부재하는 빛'이라는 타이틀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방법론적으로 태양의 잔상을 그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태양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한다. 독립된 잔상을 관찰하려면 곧바로 눈을 감아야 하고 어둠 속에서 관찰한 형태와 색을 기억해서 다시 눈을 뜬 후에야 기록할 수 있다. 빛을 바라보는 시간에 비례하여 잔상 또한 길게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눈이 쉽게 혹사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잔상을 기억해서 기록하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빛의 느낌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다. 학습된 기준에 의거해 색을 구별하는 일도 다른 사람의 확인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찰나찰나의 현상을 기억에 의존해야 하는 방법론적 한계도 존재한다. 나는 이러한 제약들을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 야외에서 해를 직관하며 작업했고 빠른 기록과 무한 수정이 가능한 태블릿을 활용했다.
사실 잔상과 같은 현상을 회화라는 물질적 매체와 재료로 그 느낌 그대로 표현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빛나는 태양을 극사실로 그린 그림을 보더라도 눈이 부시지 않는 것과 같다. 회화로서의 재현적 한계를 극복하고 한순간도 고정되지 않은 잔상의 일루전을 연출하기 위해 이번 전시에는 특수조명이 설치된다. 그림이 반사되어 표면의 실체를 드러내면 일루전이 상실되기 때문에 반사를 최소화하는 안료를 분사하며 레이어를 쌓듯이 작업했고 조명은 잔상이 변화하는 속도에 맞춰 각 그림에 사용된 색감에 반응하고 그 보색까지 수많은 색이 구현되도록 프로그래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