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애: Night Shade

17 April - 30 Ma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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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이승애는 2014년 영국왕립예술대 재학 시절부터 애니메이션-드로잉시리즈를 선보이며 한 장의 종이가 작가의 상상력과 치밀한 기획, 극한의 매진을 통해 신화적 서사성을 지닌 독창적인 모노크롬 애니메이션으로 승화되는 과정의 미학을 보여주었다. Night Shade》는 지난 1년간 챕터투 레지던시에 상주하면서 새롭게 시도한 탁본 기반의 드로잉과 애니메이션 작업인〈 우연한 밤〉(2019-20, 19)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종이와 연필이라는 단순한 재료로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시각적 천일야화를 꾸준히 구축해 온 작가가 향후 어떤 방식으로 예술적 지평을 넓혀 갈 것인지를 유추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작가가 일상적으로 자주 머무는 공간의 벽면을 종이와 흑연을 이용하여 마치 탁본을 하듯 수십 수백 번 문지르는 수행적 드로잉 기법의 시도와 시행착오가 이번 전시의 주제작인, 〈우연한 밤〉의 모태가 되었다. 탁본을 통해 드러나게 된 이미지들이 작가에게 익숙하게 느껴지며, 마치 원래 그렇게존재했던 것들처럼 보이는 점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인 의구심이 추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선 작가는 벽면에 종이를 한 장씩 대고 탁본을 진행하고, 벽의 표층적 물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여러 장의 종이는 원래의 좌표와 다르게 작가에 의해 불특정하게 배열되고 이어 붙여진다. 이러한 과정이 제공한 모종의 배경적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되었거나 연상된 이미지들을 그려나간다. 어느 순간 그 이미지들은 스스로 모양과 노출된 존재들을 복제하고 증식되어 나간다.

 

작가는 특정한 이미지를 재현하려는 의도를 최대한 제어하고 우연히 발견된 형상들을 연결해나가는 방식으로 작업을 완성한다. 은밀하게 외벽에 흔적의 형태로 기거하던 이미지들은 마치 작가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된 듯한 분위기를 풍기며 애니메이션 포맷으로도 제작되었다. 작가는 마치 깊은 동굴에서 불을 비춰 거대한 동굴 벽화를 더듬듯 바라보는 것처럼, 내가 알고 있는 세계를 초월하는 환상의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순간의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탁본에 의해 채워진 배경과 그 위에 알 듯 모를 듯 존재하는 이미지들은 밝은 낮에 명징하게 파악되는 이미지들이 아니라 마치 어두운 밤에 어른거리는 그림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아직도 근대적 이성이 지배하는 시각적 인식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환경에서 비과학적이고 편향된 감각을 동원해 외부를 인식하는 체험과 유사하다. 작가가 말하는 우연과 필연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찾기 위한 회화적 실험은 인간 기술의 제어범주를 벗어난 미지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감과도 연결된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대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그로 인한 부작용이 속출하는 오늘날, 이승애의 작품은 우리를 둘러싼 복잡한 외부 세계의 존재들에 대해 알거나 모른다는 이분법적 태도에서 벗어나 그 모호성을 자신의 긍정적인 일부로 받아들여 볼 것을 제안한다.

 

이승애는 영국 런던의 왕립예술대학교(Royal College of Art) 회화과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런던과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중인 시각예술작가이다. 그는 독특하고 상상력 넘치는 몬스터 시리즈 드로잉으로 2004년 스위스 아트바젤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2천년대 초반부터 국내 미술계의 떠오르는 신예 작가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말보로 파인아트 갤러리(런던), 주영한국문화원(런던), 두산갤러리(뉴욕), 아라리오갤러리(서울) 등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서울시립미술관, 일민미술관, 코리아나미술관 스페이스 씨, 소마미술관 등에서 개최된 단체전과 2012년 광저우트리엔날레 주제기획전을 비롯 다수의 국제미술행사에 참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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