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진: 머리
CHAPTER II 2020. 6. 18 - 7. 25
CHAPTER II Yard 2020. 8. 26 - 9. 26
《머리(Head)》전은 마이크로 조각 기법으로 창조한 군상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세계라는 독특한 주제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구축해온 함진 작가가 1년여간의 챕터투 레지던시를 마감하며 신작을 선보이는 전시이다.
초기에 함진은 합성 점토와 비미술적 재료 등을 혼합하여 아주 작은 크기로 분한 인간, 동물, 괴생명체들을 창조하고, 현대인의 존재론적 처지에 빗댄 함축적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십여 년 전부터는 검은 점토로 소재를 단일화하면서 동시에 작품의 스케일감을 키우고 구상적 요소를 덜어내는 기법에 주력해 왔는데, 이는 작가에게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넘어 창조된 작품의 순수한 현전성에 집중하는 눈을 열어 주었다. 작품의 외적 지향점이 단순한 즉물적 대상의 재현에서 한층 자유로워지게 된 것도 이 시기에 작가가 거둔 값진 결실 중 하나이다.
2019년 챕터투 입주작가전으로 열린 《Phantom Mode》에서 작가는 특정할 수는 없지만 미확인 생명체 또는 유기물의 형태를 띤 10cm 미만의 작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무엇보다도 서사적 요소가 배제되고 무채색 점토의 단순성과 결별한 제작 방식을 적용한 점 등에서, 레지던시 기간이 작가에게 있어서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내포한 전시이기도 하였다. 동시에, 특정한 대상의 외형을 성취하고자 하는 동경은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진화했는데, 형상을 구축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앞서 언급한 “형상을 구축하고자 하는 목적”은 의미론적으로 초창기 함진의 작품에서의 그것과 뚜렷이 구별된다. 그의 초기 대표작, 〈틈새 인간들〉(2005)에서와 같이 초소형 조상(彫像)들이 단독 또는 복수로 하나의 상황을 연출하는 작품에서는, 각자에게 부여된 롤과 의미하는 바를 충실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반드시 식별 가능한 형태로 제작되어야 했다. 반면, 신작에서는 채색 점토 조각들이 일일이 작가의 손과 동작을 거쳐 조적되는 과정 자체가 보다 중시된다. 염두에 두고 있는 형상의 일률적인 재현이 아닌, 순간 순간의 감흥과 조형 의지가 만들어낸 그 무언가가 의미를 가진다는 접근 방식과 그 결과로 나타난 작품의 형태는 타시즘(Tachisme)이 지향하는 바와 그 궤를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작품의 귀결이 부수적으로 무언가와 흡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지, 애초부터 그 이미지의 창조가 조형 의지의 원동력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함진의 신작들은 동굴에서 발견되는 석순(石筍)의 형태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무척이나 흡사하다. 광물질을 품고 있는 동굴 내 습기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한 지점에 낙하하여 만들어낸 석순은 형형색색의 층위를 가진 입상(立像)의 형태를 띠게 되며, 그 것과 유사한 형태의 인물 또는 사물의 이름을 빗대어 구전된다. 극도로 집중한 가운데 손의 놀림과 순간순간 질료에 가하는 힘의 강약, 부분과 전체를 시시각각 조망하는 작가의 개성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물체를 탄생시키고, 이 작품이 차후에 식별되는 양상은 작품 자체를 만드는 행위에서 파생된 부차적인 결과가 된다. 이러한 탈정형적 요소는 함진의 작품이 획일적인 방향으로 해석되거나 소비되는 것에 저항하며, 작가의 창작 행위가 한층 다층적으로 뻗어나가게끔 하는 중요한 토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