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홍장오
CHAPTER II 2020.10.22 - 2020.12.5
CHAPTER II YARD 2021.2.24 - 2021.4.3
비미술적 재료를 다양하게 조합하고 그 용도를 확장하여 정교한 방식으로 제작한 이질적인 형상과 설치물을 선보여온 홍장오 작가는,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이미지와 형상에 순응하고 고착되는 우리의 내재된 심상에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상상의 확장을 주문해 왔다. 이번 전시는 단순히 신작을 선보이는 데에서 더 나아가, 자신의 작품이 보여지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성찰의 결과 또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명《 루시(Lucy)》는 다의적 의미를 지닌다. 라틴어로 ‘빛(light)’을 뜻하는 어원에서 나온 여성형 이름으로, 인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발견의 순간에 대한 명명으로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1974년, 에티오피아의 하다르(Hadar)에서 최초로 발견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Australopithecus afarensis)종의 뼛조각에 붙여졌고, 또 하나의 예는 2004년 발견된 지구에서 약 50광년 떨어져 있는 백색왜성이다. 전체가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결정체로 이루어져 있어 ‘루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작가에게 이번 전시가 스스로 하나의 변곡점이라고 여겼음을 의미한다. 즉, 과거의 작업이 특정한 주제나 개념과 상호 연결되어 내러티브한 요소를 띄었다면, 신작들은 개별 작품 하나하나의 독립적인 메시지가 강조되며 한층 다양한 미학적인 스펙트럼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들의 면면은 자연(생물과 무생물)과 인공(기계)의 형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정 구조를 해체, 중첩, 변형하여 재조합된 상상적 대체물을 보여준다. 이는 자연을 모방한 은유적 상징물이나 의인화된 기계들과는 구별되며, 현실과 가상이 만나는 경계의 지점에서 작가의 상상으로 합성된 하이브리드적 생체모형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작가는 기술이 어떻게 현재의 물리적 현실 그 자체를 형성하고 있는가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왔고, 이러한 관심은 알루미늄, 투명 혹은 반투명의 PVC 패널, 반사천, 와이어와 구슬 등 물성이 상이한 재료들이 가진 시각적, 물리적 성질이 인위적인 개입에 의해 발현하는 우연성을 최대한 활성화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새로운 개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늘 비선형적이고 비계획적이며, 이로 인한 불확정성은 작업의 마지막 결과물에 남는다. 불규칙한 배열과 정교한 대칭, 그리고 중력에 의한 자연적 늘어짐과 그것의 역행 등 물질이 처한 여러 갈래의 가능성의 조건들은 작업의 재료이자 동력이 된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모든 작품은 나무 케이스 안에 고정되어 있는 형태로 전시장에 배열되어 있다. 이러한 전시 방식은 현대 미술관들이 수장고를 단순히 작품을 저장하는 공간만이 아닌 전시의 한 형태로 활용하는 방식의 차용으로도 볼 수 있는데, 관람자에게 하나의 작품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장점 또한 가진다. 어떤 물체가 케이스에 보관된 채로 진열하는 경우는 문화 또는 역사의 맥락 안에서, 피사체를 보존하거나 있는 형태 그대로 진열 또는 연구, 보존하고자 하는 목적하에 활용되는 방식이다. 작가의 상상력의 발로이자 다중 재료의 하이브리드적 결합의 결과물인 작품의 형태를 감안할 때, 특정한 양식을 차용한 이러한 설치 방식은 작품 감상에 새로운 접근법을 제공하고 작품에 의도된 ‘격’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유용해 보인다.
홍장오는 중앙대학교 조소과 학사, 석사 과정을 수료한 후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순수미술 석사를 졸업하였다. 경기도미술관(2018), 아마도예술공간(2014), 아트선재센터 라운지 프로젝트(2012)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서울시립미술관(2003), 경기창작센터(2018), 성곡미술관(2004), 스페이스 K(2014), 더 우드밀(The Woodmill, 2010-11) 등 한국과 영국에 소재한 미술관 단체전에 참여해왔다. 그는 경기창작센터 입주작가(2018-19),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 프로그램(2014)에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