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송수민, 우정수, 유재연, 이목하
CHAPTER II 2020. 12. 17 - 2021. 1. 30
CHAPTER II Yard 2020. 12. 17 - 2021. 1. 30
송수민, 우정수, 유재연, 이목하 작가가 참여한 그룹전 《Do Not Go Gentle into That Good Night》의 타이틀은 영국 웨일스 출신의 저명한 시인인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1914–1953)의 대표작에서 연유한다.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와 함께 “꺼져가는 빛을 향해 분노하고, 또 분노하시오(Rage, rage against the dying of the light)”라는 문장이 후렴에 반복되는 이 시는, 전염병이라는 큰 격변에 의해 한 해를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혼돈에 빠진 세상과 그 구성원인 우리 자신들에게 멀리서 들려오는 외침과도 같다.
이번 전시는 자유로운 이동과 회합 등 기본적인 인권이 제한되고 생존과 직결된 행위에 매몰된 일상에서 과연 미술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에 대한 성찰에 대한 답변의 형식으로 기획되었다. 우리의 상식에 비추어 볼 때 미술의 내적 가치는 수치로 증명될 수도 없고, 우리에게 즉각적인 풍요와 물질적인 행복, 산재되어 있는 각종 문제의 해결책도 아니다. 더욱이, AI와 산업의 극단적 기술력에 기반한 장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미술은 인간의 수행성이 수반하는 태생적 불완전한 외양과 다양한 상념, 작가의 습관과 선택 등이 중첩된 ‘감정의 총합체’로 존재하기에 명쾌한 단답형 해답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인간의 시각과 여러 감정을 자극하여 우리를 생각하게 하고, 느끼게 하고, 작품 자체와 거기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떠올리게 만든다. 원래 인간만이 향유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기능이었지만, 효율화, 자동화, 획일화의 구호와 미디어, SNS의 범람 아래 침범 당하던 그 행위를 다시 촉발시킨다. 미술의 본질적 가치는 관찰과 사색, 경험의 누적을 통해 각자의 개별성을 확립시키고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을 깨우고 부추기는 데 있기에, 혼란의 시기에 우리를 다시 ‘인간화’ 하도록 일깨운다.
각자 다른 환경에서 성장하고, 상이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오고 있는 네 명의 작가들의 작품은 이 전시를 통해 서로 연결되며 독특하고 통합된 리좀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역사적 도상의 창의적인 인용’, ‘평온함과 시스템적 실패의 기묘한 동거’, ‘타자성에 대한 집요한 탐구’, ‘환상과 현실의 간극에 대한 페어리 테일’이라는 단서를 품고 있는 작품들은 전시장을 점유하고, 아직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세기말적 분위기를 다시 소환하여 시각적으로 유려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2020년이라는 ‘불능의 시대’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참여 작가들이 미명 아래 꾸어온 변혁의 이정표이기도 한 작품들은 한목소리로 음울한 공포에 짓눌리어 있다가 기어이 지나가 버린 한 해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우리를 향해 무언의 호소를 던지는 듯하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성급한 기대로 도망치듯 2020년과 작별하지 말라고. 저물어 가는 한 해에 분노하고 무언가 의미 있던 일을 떠올리고 상기하고 기억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