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표: 김수연, 조정환, 홍주희
챕터투는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제7회 챕터투 레지던시 입주작가전 《이정표(Yellow Arrows)》를 개최한다. 올가을부터 새롭게 1년간의 입주 과정을 이어갈 김수연(Kim Su Yeon), 조정환(Cho Jung Hwan), 홍주희(Hong Ju Hee) 세 명의 작가들의 그간의 작업적 성취와 작가로서 쌓아갈 앞으로의 여정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의 작품에 있어 "무엇인가가 나타나려 했다가 사라져 버렸다."라는 주된 비평은, 물감을 떨어뜨리는 행위의 즉흥성과 화면에 골고루 시간차를 가지고 흩뿌려진 물감이 우연히 만들어 낸 '미지의 이미지'에 신화적 서사를 부여한다. 선언적 문장에 의해 지펴진 상상력은 평면의 캔버스를 즉각 깊은 심연으로 탈바꿈시키고, 그 물리적인 얇은 레이어에 수많은 내러티브가 잠복하고 있음을 이내 알아차리게 한다. 비평과 관찰이 작품에는 '두 번째의 완성'과도 같은 것은, 비로소 타자가 바라보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의도가 호소력과 객관성을 갖게 되고 창작 행위가 실질적으로 일단락되기 때문이다.
이 비평을 조금 더 살펴보면, 어떤 미지의 대상은 저 아래 이미 존재하고 있는데 우리가 가진 정보로는 그것의 형태와 이동 경로,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없음에 대한 탄식과도 같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스터리적 현상에 대한 각양각색의 추측과 견해 또한 이것과 유사한 전개를 보이며, 포착된 단서들과 증거들에 기댄 가설들은 실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긴다. 회고전이 미적 감흥 없이 한 작가의 성취에 대한 연대기적 축약에 집중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배적인 전시 양식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시대별로 부각된 특정한 양식과 테크닉이 그다음 시기로 어떻게 전이되어 왔는지를 효과적으로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작가의 커리어가 아직 숙성의 단계에 도달하지 않은 경우는 큐레이션에 보다 공을 들여야 하고, 어떠한 기준에 따라 접근하였냐에 따라 편차가 클 수밖에 없다.
그룹전을 위한 작품 선별 과정은 마치 수면 아래에 어른 거리는 물체를 상상하고 관찰 내용에 부합하는 이론과 지식을 끌어모아 그럴듯한 스토리를 엮어내는 행위와 유사하다. 수많은 가능성을 뒤로하고 한정된 공간을 위한 몇 점을 고르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와 함께 어떠한 맥락에 기초하고 완성된 전시로서 설득력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의 손에 카메라가 쥐어져 있고 이미지의 범람은 너무 당연하며 지난 세기말 들려오던 페인팅의 종말에 대한 소문들조차 진부해진 이 시대에, 작가들은 자신의 독창성을 구상의 단계부터 스스로 검열하고 보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많은 경우 가능한 범위 내에서 기존 이미지를 피하든지 또는 차용 여부를 공식화하는 양자택일이 흔한 해법이다. 영감의 원천에 대한 스스로의 확고한 자각과 테크닉의 차별화 및 특정 미디엄의 천착으로 유일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매력적인 해법으로 들리지만, 고비마다 찾아오는 회의와 조급함과 싸워야 하는 지난한 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이정표(Yellow Arrows)》전은 다른 시각과 맥락에서 선별된 자신의 작품을 마주하고 거기에 깃든 순간적 영감의 원천을 재고하도록 하여, 미래의 작업 세계 구축을 돕는 디딤돌로 삼게 하기 위한 의도로 기획되었다. 한 시기를 집중적으로 조망하지도, 견고한 상호 연결성 또한 쉽게 드러내지 않는 작품들은 보다 긴 시간을 들여 바라보기를 요구하며 균등 분할된 전시장 안에 팽팽한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어떠한 작가적 관심사와 추구하는 조형 의지가 추동력을 가지고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어 왔는지는 열성적 관람자에게 주어지는 뜻밖의 선물이기도 하다.
김수연(b.1986)은 국민대학교 미술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P21(2022), 갤러리2(2021, 2018), SH Art Project(2019), Aando Fine Art(2016)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챕터투(2023), 에스더 쉬퍼 베를린/서울(2023), 아트센터 화이트블럭(2023), 울산시립미술관(2022), 뮤지엄헤드(2021), 캔 파운데이션 오래된 집(2020), OCI미술관(2020), 일민미술관(2019), 부산시립미술관(2018)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조정환(b.1982)은 동의대학교 건축학과 및 부산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부산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2019), 갤러리 이(2015), 갤러리 뭉클(2015)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부산시립미술관(2023), 스페이스 닻(2021), 오픈스페이스 배(2020),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2020), 디오티미술관(2020),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2016) 등지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홍주희(b.1988)는 서울여자대학교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영국왕립예술학교 비주얼커뮤니케이션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학부 박사과정을 수료하였다. WWW 스페이스(2022)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술술센터(2022), WRM Space(2021), 서울 디자인 페스티벌(202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디자인 레지던시(2019), 영국왕립예술학교(2018, 2017)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