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 566-55 엔솔로지: 노충현, 이지양, 김지은, 권태경, 린다 하벤슈타인
챕터투 (Chapter II)는 "연남 566-55 엔솔로지"전을 2017년 2월 9일 부터 2017년 3월 25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서울의 서부 지역의 대표적인 주거지역인 연남동의 지명은 70년대 중반 행정구역 개편시 연희동의 남쪽에 위치하였다고 해서 생겨났다. 오랫동안 주택가이자 홍대 인근의 베드타운 기능을 하던 연남동은 경의선 산책로의 등장과 함께 젊은층이 선호하는 상업 및 위락 시설이 대거 생겨나게 되는데, 이로 인해 많은 수의 주거지역이 상업공간으로 변모하거나 혼재하는 과정이 진행중이다. 챕터투가 자리잡고 있는 연남동 566-55번지는 쳅터투 후원사의 사옥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공간은 수년 전까지 슈퍼마켓과 의약부품 창고로 쓰였던 공간이며, 전시공간으로 변모한 사옥의 1층만이 아니라 주변부도 식당, 카페, 각종 숍들이 속속 들어서며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챕터투의 설립에 즈음해 위치한 장소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이번 기획은 노충현(b.1970), 이지양(b.1979), 김지은(b.1977), 권태경(b.1992), 린다 하벤슈타인(Linda Havenstein, b.1984) 등 총 다섯 작가의 작품을 통해 연남동 566-55번지의 궤적을 밟아보고자 한다. 또한 단순히 특정 장소의 이력을 살피는 데에서 더 나아가 대도시의 팽창과 쇠락, 도시 재활성화의 파급 효과, 젠트리피케이션 등 수도 서울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도시 재편 현상과, 그와 연관된 사적인 삶의 흔적에 대해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노충현의 'Room (2009)'은 주변에서 흔히 목격되는 전형적인 상가건물의 내부를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몰개성적이며 익명적으로 다루어진 공간은, 전형적인 구도하에 모노톤의 컬러가 화면에 균질하게 침전해있다. 화면을 지배하고 있는 '비어짐'은 무언가 일시적이어어야 하는 현상이 영원히 고착된것 같은 분위기를 내포하며, 대도시의 메커니즘 안에서 상업공간의 기능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대항하여 일종의 언케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제로 기능한다.
이지양의 'Tweedledum Tweedledee and the Vantage Loaf (2015)'은 생쥐 여러마리가 방역 목적의 살서용 끈끈이에 걸려 죽어있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작가는 두개의 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힘의 역학관계와 현상학적 도식을, 도시의 창고에서 흔히 관찰되는 양상인 죽어있는 쥐에 대입하여 은유적으로 보여주 고 있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의 사물의 관습적 가치와 존재의 타당성이 인간 효용의 유무와 무관하지 않음을 우리에게 환기시켜 주고 있다.
김지은의 'Plumbing First (2014)'는 현대 도시 건축물의 일상적인 신축과 철거, 용도가 변경되는 현장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도시 과밀화와 맞물린 장기적인 부동산의 활황은 도시의 구조적 하부를 이루고 있는 건축물의 연한을 점점줄여왔고, 아파트와 같은 밀집형 주거구역과 도심내 대단위 상업지구가 선호되는 우리나라의 특성은 이러한 현상을 더욱 부채질하여 왔다. 작가는 상업적인 용도와 기능적 효용 극대화의 논리하에서 건축물은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품과 다름 없이 소비되고 있음을, ‘Plumbing First’를 통해 현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권태경의 ‘선언 (2016)'은 백색 표면의 캔버스를 관통하여 다수의 전기 공사용 튜브가 돌출되거나 바닥에 늘어뜨려진 설치 작품이다. 외향적으로 무언가가 철거되거나 작업중에 있는 공사 현장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작가는 이를 통해 회화의 규범적 용례에 대한 일종의 확장과 도발을 꾀하고 있다. 살이자 덩어리의 구조이며, 견고히 쌓아 올린 정신에 비유되는 캔버스를 관통한 튜브는 평면에서 공간으로 도약하는 장치로 소용되어 극복 대상과 기묘한 동거를 하고 있다.월경(越境)을 목적으로 한 이러한 고착화된 시도는 관통된 캔버스의 침묵과 더불어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풍경을 연출한다.
린다 하벤슈타인(Linda Havenstein)의 ‘Leveling (2015)’은 주체와 객체와의 관계, 그리고 그러한 관계 설정에 동인이 되어 개입하는 외부 자극의 양태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20분 분량의 영상에서 한 여자는 계속해서 단단한 크림 형태의 액체를 자신의 얼굴에 펴바르고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얼굴 표정이나 윤곽은 점차 사라져가고 층층이 싸여진 하나의 덩어리로 변모한다. 작가는 행동의 주체였던 대상이 외부로부터의 개입과 간섭, 영향을 통해 자발성이 왜곡된 형태로 서서히 객체로 변해가는 모습과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모습의 삶이 공존하던 도심 곳곳이 자본의 논리에 의해 획일화된 하나의 거대한 쇼룸으로 변모하고 있는 대도시의 한 단면에 대한 알레고리적 접근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