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균: Notional Flag #5-A
챕터투는 12월 13일부터 2020년 1월 18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주세균 (Ju Se Kyun, b.1980)의 개인전, Notional Flag #5 - A를 개최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적 규범 체계와 상징이 가진 함의에 대한 의문을 설치, 조각,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풀어오고 있는 작가는, 챕터투 전시장과 윈도우 갤러리에서 각각 대형 설치작인 <Flag> 시리즈와 최근작인 <Tracing Drawing>을 선보인다.
여기 형형색색의 기(flag)가 놓여있다. 퍼레이드에 항시 등장하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국기의 형식을 빌려 전시장 바닥에 서로 면을 맞대고 208개의 기가 놓여있다. 사실, 이 기들은 작가가 직접 염색한 모래를 일일이 바닥에 세밀하게 뿌리는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세밀한 뿌리기'라는 작가의 구도자적 수행은 오직 중력이라는 외력에 의지하여 진행되고, 전시 기간 동안 의도된 원형을 유지한다.
'Notional Flag'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기들은 실재하는 국가의 기가 아니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실체를 상징하는 A3 크기의 이미지는 기(flag)의 형식으로 읽히는데, 이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 입력되어 있는 국기(national flag)의 구성요소인, 패턴, 문양, 색깔, 외형의 기준을 오롯이 충족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한 전시의 목적, 즉, 존재하지 않는 기를 보여주는 행위와 그와 연계된 연상 작용의 유도는 관람자에 따라 선택적으로 달성된다. 쉽게 말해 기준점이 될 수 있는 국기, 예를 들어 자국의 국기이거나 미디어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요국의 국기에 대한 앎의 유무가 기준점이 되어, 대상이 되는 이미지의 실재 유무를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체 집단의 원전성 평가를 담보하지는 않는데,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가 창조한 기의 이미지들이 무척이나 그럴싸한 외형을 지녔기 때문이다.
과거 미 대륙을 횡단하는 여행자가 자신의 지도에서 유타(Utah)와 콜로라도(Colorado) 주의 명기가 인쇄 오류로 뒤 바뀌어 있는 것을 알았을 때와 유사한 상황, 이 지도의 신뢰성을 전면 부정해야 하나 아니면 이것이 유일한 오기라고 짐짓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내적 갈등을 떠올려 보자. 이 사례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끈다. 작품의 제목이자 중심 키워드인 개념(notion)은 반드시 실체(fact)에 대한 정확한 반영에 의해 형성되지 않고, 이는 임의의 이미지 패턴이 우리에게 실재하는 국기와 등가적으로 오인되었던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관계는 자의적이라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의 주장은 미국의 성조기와 영국의 유니언잭이 규칙과 공식의 산물이 아닌 우연성과 선택의 결과임을 말해주는데, 이는 절대적인 지식이 존재하지 않는 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수 많은 규범과 정의, 의미는 '실체와 개념' 사이 어디엔가에 기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임을 말해준다. 따라서, 작가에게 있어 'Notional'은 언제나 'National'로 전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고, 이는 동시에, 우리가 실체라고 믿었던 기존의 정의와 의미, 상징들은 유사시 전복될 가능성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전시 기간이 종료된 후 작가가 작품을 붓으로 쓸어내어 한낱 모래 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행위는, 단순히 작품의 소멸을 뜻하기보다는 작품의 진정한 완성으로 해석되어야 함이 옳다.
주세균은 국민대학교에서 입체미술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도자공예과를 부전공으로 수학하였다. OCI 미술관 개인전을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남서울미술관, 금호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주중 한국문화원, 대만 도자 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대영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