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모드: 이승애, 함진, 허우중

13 June - 20 Jul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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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투는 제 3기 레지던시 입주작가전인 ‘팬텀 모드(Phantom Mode)’를 6월 13일부터 7월 20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이승애, 함 진, 허우중 작가 3인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드로잉과 비디오, 조각, 페인팅 등 서로 다른 장르에 집중하며 자신의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 온 참여 작가들의 그간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근작을 통해 앞으로의 행보를 가늠해 보고자 함에 있다.

 

일상적 용어이자 예술에 있어서 형식(Form)에 관여된 주요 요소인 ‘간격(Interval)’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 작가 작품에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간격’은 작동의 멈춤 또는 비생산적인 상황(Null)에 견주어질 것이 아니라, 마치 음과 음 사이의 공백처럼 다양한 행위와 의미의 완결을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단계로 보아야 함이 타당하다.

 

이승애 작가는 한 장의 종이에서 수행한 수많은 드로잉들의 순차적인 궤적을 영상으로 구현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한 드로잉이 뒤따르는 드로잉으로 시지각(視知覺)이 용인하는 범위 안에서 서사적인 도약을 하기 위해서는 정지 상태의 피사체의 움직임이 다음 동작으로 유추할 수 있는 만큼만의 간격을 두고 이동하여야 하고, 이러한 임계적 움직임의 연속적인 유발은 정지 상태의 피사체에 동적 효과와 서사구조를 부여하는 추력으로 작용한다. 마치 기술적 측면에서의 영화 매체가 초당 24프레임만을 충족시키듯이, 인지 범위 안에서 용인되는 이러한 간격은 오롯이 작가의 일인 창작 행위에만 기대어야 하는 작업의 엄혹함에 비추어 볼 때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램프(2017)는 이승애가 그간 몰두해왔던 구성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낙화와 불빛의 정적인 묘사와 극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램프의 온(On) 모드로 시작되는 작품은 갓에 수놓아진 꽃의 낙화를 통해 이 메커니즘이 시간성을 가지면서 환원될 수 없는 여정에 들어섰음을 암시한다. 스위치의 움직임은 이러한 과정이 시스템 밖의 외력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환기시키며, 드라마틱한 종결과 더불어 모든 물리 원칙의 토대로써 자연의 거스를 수 없는 순환 고리를 표상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함진 작가의 작품은 공포와 동경의 어느 지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이끈다. 흡사 살아있는 생명체와 유사하게 생긴 작은 조각들은 오랜 기간 동안 탐구하고 연마해 온 작가 상상력의 발로이자 작가로서 외부와 소통하고자 내세운 메신저이다. 10cm미만의 작은 작품들은 그 크기가 가지는 상징성에 주목해야 하는데, 소형이라는 외형적 특질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미확인 물체에 대해 가지는 막연한 경계와 불안감을 누그러뜨리는 기능을 한다. 예를 들어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근해에 출몰하기 시작한 파란고리문어는 피서철이 가까워지면 언론에 자주 언급되는데, 맹독성 열대 생물이나 20cm 미만의 크기와 다른 다채로운 외형은 사람들의 분별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보편적으로 인간이 모든 사물을 평가하는 기준점으로 사용하는 우리의 신체적인 크기에 한참 미달하는 조각 작품은, 서두에서 언급한 공포와 동경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인식의 불완전한 간격 안에서 흥미의 대상으로 승화하고 작가만 알고 있음직한 어디엔가 존재하는 유기체로서의 지위를 획득한다. 특히, 인간의 신체 부분이나 특정한 사물이 작위적으로 확장된 모습의 묘사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과 즉흥적인 손놀림이 빚어낸 조각적 오토마티즘을 탐구하고 있음이 흥미롭다.

 

허우중 작가는 사물의 상태나 관념적인 낱말의 조합이 만들어 낸 모호하고 철학적인 문장이 내포하는 이질성과 일상성과의 이격을 포착하여, 기하학적 물체와 도형들이 합심하여 용케 균형을 잡고 있는 화면을 재현해 왔다. 이러한 불안정함과 긴박, 균형과 불균형의 동거에 관한 이미지는 작가가 현대인이 상시적으로 직면하는 불안, 공허, 막막함 등을 회화의 형태로 전달하는 기제로 활용되었다. 근작에서는 사물의 형태가 사라지고 오직 선, 곡선의 합으로만 이러한 구도를 묘사해 내었는데, 뜻밖에도 이러한 극단적인 단순함은 이입감을 가중시키고 대상들 간의 종속 관계를 보다 뚜렷이 하는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선과 곡선, 그리고 기하학적 도형이 만들어내는 캔버스는 의도적인 이미지 간 간격과 형태의 대소에 의해 운동성이 부여되는데, 이는 자유로이 부유하며 필요에 따라 연횡하는 군소 집합의 움직임과 수런거림으로 표출된다. 특히 감각적으로 계산된 각 이미지들의 콤포지션은 단순히 흰색의 캔버스 바탕에 가늘게 그어진 미약한 선들의 무작위적 군집을 넘어, 바실리 칸딘스키가 주창한 것처럼 각도와 방향성에 따라 각기 다른 채도를 담당하면서 화면 전체에 고유한 발색을 드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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