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우혁: 일요일 오후 세 시

11 April - 25 May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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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챕터투는 4월 11일부터 5월 25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빈우혁(Bin Woo Hyuk, b.1981)의 개인전 <일요일 오후 세시3pm on Sunday>를 개최한다. 베를린과 서울을 기반 으로 활동하며 자신만의 독특한 감성과 색채 감각을 구축한 빈우혁이 지난 일 년여간 머물던 챕터투 레지던시를 마감하며 그 간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다.

 

갤러리 한가득 숲의 정경이 펼쳐져 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수만 번의 풍화와 침식 작용을 거치며 서서히 조성된 오래된 숲의 중심부에서 발견되는 작은 호숫가, 혹은 늪지대의 풍경이다. 자연은 항상 그럴듯한 모습으로 우리 주변에 머물고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에, 이 풍경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작가의 상상의 발로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 1939)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낯선 친숙함 (unheimlichheit)'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어디엔가 존재할 듯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 수면 위에 펼쳐진 주변 숲의 어른거림, 부유하는 수련과 흩뿌려진 나뭇잎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존재들인지라, 작가가 실제 본 풍경이라고 하더라도 그 또한 다시 그런 정경을 마주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 일요일 오후 세시3pm on Sunday >는 전시 제목이자 주제로서, 이번 전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가 수시로 거닐던 베를린 근교 숲의 정경이 내포하던 내밀한 느낌에 대한 시간적 표상이다. 주말이 저녁으로 접어드는 시간대이자 서서히 숲에 새로운 방문객들이 잦아드는 시간, 태양은 최고점을 지나 서쪽으로 기울며 숲의 그림자를 점차 크게 기울인다. 잔바람이 수면을 일렁거리게 하고 주변 나무를 거치면서 녹색을 발하는 햇빛은 그림자와 더불어 수면에 다채로움을 더한다. 오래전 인상파 화가들이 탄복해 마지않았을 그 순간에서 빈우혁은 큰 평화와 삶의 오묘함을 느꼈고, 자신만의 순수 회화가 지향해야 하는 이상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을 화폭에 옮길 땐 풍경 이면에 어떤 비판이나 의미도 담아내지 않고, 서사적인 요소를 제거해 풍경에 집중했다. 그는 비판이나 풍자, 불필요한 논쟁, 철학적 차용을 자제하고 그리는 대상과 행위 자체에 주목하는 태도를 보인다. 특히, 순수 추상의 대작인 "Abyssus(2019)"는 작가가 숲의 정경에 대한 탐구에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기능한다. 형태적으로 익숙한 이미지가 배제된 거대한 화면은 인접한 구상 작품들을 통해서만 그 출처를 드러낸다. 짙은 녹색과 검은색이 지배하는 캔버스는 반복되는 붓질이 만들어낸 희미한 캔버스 흰 바탕의 노출에만 의지하면서도 화면 전체에 오묘한 빛을 흩뿌린다. 수면의 작은 한 부분, 자연의 기본 요소가 응당 품고 있는 추상성에 대한 세밀한 탐구는, 오히려 그 제목만큼이나 거대하고 심오하게 다가온다. 

 

빈우혁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하고, 갤러리바톤(2017), 경기도 미술관(2018), OCI 미술관(2014)과 베를린 글로가우에어(2014) 등 개인전은 물론 미국, 일본, 대만, 한국을 오가며 다양한 전시에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 미술관 퀀텀점프 작가 선정(2017), 한국은행 신진작가(2016), 퍼블릭아트 뉴 히어로(2015) 등 유수 수상 경력으로 인정받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 MICA (Maryland, US), OCI 미술관, 삼양 사옥 등 국내외 기관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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