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 / 부재: Annaïk Lou Pitteloud, 김기영, 이지연, 장민승, 정해련
챕터투 (Chapter II)는 "현존/부재 (Presence/Absence)"전을 2017년 7월 27일 부터 8월 26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수전 손택 (Susan Sontag, 1933 - 2004)은 현대무용인 유효한 빛 (Available Light, 1983)의 리뷰에서 안무가의 사고체계를 빌어, 예술 표현 형식에서의 부재와 현존과의 상호관계, 미(美)라는 다원적 개념과의 밀접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특히, 부재(Absence)가 작품의 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지하는 중요성, 단순한 무(Emptyness)가 아닌 미의 숨겨진 본질일 수 있다는 논거를 비중있게 다룬다. 도상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재현된 작품은 화면 또는 대상물에 부여된 이미지를 통해서 현현(manifestation)하는데, '시각 반응'이라는 범주에서 작품의 표층 아래, 비시각 영역에 머물러 있는 부재는 작품의 의미와 개념의 구조를 지지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작용한다. 이러한 부재는 다양한 양상으로 존재하는데, 주제 자체가 될 수 도 있고 (불특정적이나 범람한 사회 현상, 익숙한 사물에서의 보여지는 특이점) 시간, 분위기, 공간, 느낌 등의 비물질적 요소를 유효하게 대변하기도 한다..
아나익 (Annaïk Lou Pitteloud)은 글로벌 시스템하 만연한 사회적 현상, 좁게는 국제미술계의 내부에 은거하고 있는 미묘한 양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바탕으로 작가가 탄생시킨 신조어를 주제로 한 네온사인 작업을 선보인다. 산업 표준으로 자리잡은 CMYK 컬러 포맷과 광고 매체의 통상적인 외형을 빌어 표현된 단어들은, 마치 실재 존재하였던 단어인 양 두 의미를 함축성있게 내포하며 매스미디어 또는 불특정적인 사회 현상에서 우리가 경험했음직한 감상과 느낌을 대변한다.
김기영 작가의 베이칸시 (Vacancy, 2017)는 평범한 의자를 대상으로 깎아내는 행위를 통해 의자의 형상은 지니되 의자 본연의 기능성이 상실된 비가역적 상황을 내포하는 조각 작품이다. 작가의 반복된 깎아내기를 통해 최소한의 형태만 유지하는 상황에 내몰린 '의자'는, 효용 가치와 존재 가치 간의 등가 법칙이 적용되는 공산품에서의 기능성의 부재는 곧 존재 가치의 부정으로 이어짐을 의미하는지, 의자의 원형으로 관념 세계속에 존재하는 이데아 (Idea)의 표상으로서의 지위는 유지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지연 작가에게 공간은, 사전적 의미의 충족 조건인 사람이나 사물의 존재 또는 활동 유무에 의해 좌우되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닌 그 자체가 작품의 토대를 이루는 핵심 주제이다. 그런점에서 ‘그림 속에 그리다’ 연작은 작가의 기억속에 존재하는 수 많은 공간들에 대한 주관적인 기억의 현시이자 일종의 오마주이다. 원색의 대비로 강조된 문과 계단의 형태가 내면으로 소실되며 중첩적으로 이어지는 화면은, 사람이나 사물의 흔적이 일체 배제되어 있고 한 공간의 형태와 크기가 창조하는 인접한 다른 공간의 보여짐에 집중하도록 이끈다.
장민승의 블랙선셋 (Black Sunset, 2012 - 2017)은 낙조의 순간을 흑백의 계조로만 담담하게 포착해낸 사진 작품인데 장소에 대한 일체의 정보를 배제하는 구성을 통해, 대상은 '무명의 장소,' '무명의 바다'로 일반화되고 이는 관람자를 그 근원과 원형질에 대해 보다 집중하도록 유도하고 환기시킨다. 흑백의 그라데이션으로만 섬세하게 표현된, 극도로 절제되어 보여지는 바다의 풍경은 작가가 의도한 서사성이 더해지면서 오로지 시각 기관에만 호소하는 주체적 대상으로 재탄생한다.
정해련 작가의 WEB003(2014)는 오랜 외국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정착하면서 느낀 작가의 내밀한 경험이 투영된 설치 작품이다. 특수한 목적하 설치된 산업용 설비의 외형을 지닌 작업은 제목에서 유추되듯,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형상이다. 사회의 관계망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성원간 상호 요구되는 다양한 형태의 의무와 예식이 강조되는 과정에서 정작 관계 자체가 순수하게 지향하는 목적이 결핍되는 상황에 대한 작가의 심상은, 존재 이유가 불투명한 채 언캐니하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작품의 외형에 의해 시각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