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로바틱 코스모스 : 비 - 오 - 오 - 케이: 손현선, 윤지영, 장서영
회화와 조각, 영상이라는 상이한 매체를 기반으로 작업을 해온 세 명의 작가가 결성한 '아크로바틱 코스모스'는, 올 초 원앤제이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통하여 그 출현을 알렸고, 이번 챕터투 전시는 프로젝트 명과 동일한 타이틀로 열린 원앤제이 전시의 프리퀄(Prequel)과 같은 성격을 띄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광범위하고 집요한 고찰"이 세 명이 결성한 프로젝트의 첫 번째 탐구 주제였고 그 것의 현현화(manifestation)가올 삼월의 전시였다면, 서두에 프리퀼이라는 언급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이번 전시는 이 프로젝트 그룹이 추구하는 예술적 지향점과 그것을 위한 여정의 그간의 경과를 엿 볼 수 있는 전시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과 상상력, 미적 접근 방식을 활용해 존재는 하지만 특정 지을 수 없는 것의 형태에 대하여 얘기해 오고있다. 그 것들은 비가시적이기에 명명(命名)를 통한 실제 사물과의 의미론적/시각적 관계를 형성하지 않지만, 이들이 말하는 "보이지않는 것"에 대한 나름의 정의는 "기표(signifier)와 기의(signified)의 관계는 자의적(arbitrary)"이라는 페르디낭 드 소쉬르(1857-1913, 스위스)의 주장처럼, 선엄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에게 상당히 수용적이기도 하다.
전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대형 선반 위에 세 작가의 작품이 아카이브 형식을 빌어 질서정연하게 혼재되어 있는데, 그 중에는 하나의완결된 작품으로 명명될 수 있는 것들과 작품 제작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된 전후의 과정들이다.
손현선 작가의 <거울>(2018)은, 물, 바람 등 무색과 유동의 물질에 대한 회화화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이다. 전작인 물과 바람의 시각화에 있어 그 물체들의 상태, 즉 물리적인 운동성의 포착이 비유형적인 대상의 평면화를 가능케하였던 매개였다면, 거울은 무엇인가를 비추어 내는 기능과 그 자체가 몸체인 물체에 대한 회화적 기록이다. 세 물질 모두 존재 자체와 그것의 기능이 직접적으로 결부된 물질이나, 자연 상태로 존재하는 물과 바람과 달리 인공물인 거울은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는 상태인 "기능이 기능하지 않는 상태"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 이러한 '기능'이라는 명제는 앞으로 작가에게 자신의 회화 언어에 다양한 내러티브를 부여할 수 있은 기제로 작용할 것 같은 예감을 준다.
윤지영 작가는 "믈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다양한 변주를 통해 풀어오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작업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실리콘의 면들과 스케치, 인체 3D 도면의 카피 등이 중심적으로 전개 된다. 앞서 손현선 작가는 물의 회화화에 있어서컵이라는 객체를 활용하였는데, 그렇다고 물의 존재에 있어서 컵의 유무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윤지영 작가에게 있어서 이러한 '명제 관계'는 작품의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시각에 반응하는 표피가 물체 자체를 규정하고 대표하도록 되어있는 우리의 인지 체계의 이면에 대한 일종의 성찰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즉, 컵이 물의 존재를 규정하고 제한하고 왜곡하는 지점을 극복하기 위해, 윤지영은 표피와 물질과의 관계, 자연 상태에서는 영원히 해제될 수 없는 그 종속 관계의 이면을 논리적으로 들추어 낸다.
장서영 작가는 <모자, 초, 케이크>(2017)에서 각기 다른 세개의 물체를 등장시켜 시간을 세는 각각의 방법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시간이라 함은 모든 자연 단계에서 동일성이 계속 붕괴되는 상태로도 설명될 수 있는데, 이는 시간의 국제 표준이 세슘원자의 진동에대한 특정한 기준으로 표시됨과도 일맥상통한다. 좌대에 놓여진 시간의 진행을 표현하는 매개가 된 원형의 눈금 종이는 30도 단위로소멸되며 예각이 가속화되는 원형 뿔의 형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원형 뿔은 표면의 눈금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시간의 시각화 하기위한 일종의 더미 (Dummy)로서의 상태임을 여과 없이 반영하는데, 이는 손현선의 컵, 윤지영의 작품에서의 표피에 대한 개념적 정의와그 궤를 같이한다. 존재 자체가 불분명한 개념에 대한 편의상 일률적인 정의에 해당하는 '시간'에 대한 작가의 일련의 시도는, 일상적인물건과 인과 과정 간의 연계로 풀어지며, 그 만의 방식으로 시간을 우리의 감각 기관에 순응하도록 이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