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희원: 패럴렐 그라운드

1 - 30 December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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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어떤 풍경의 화가 글쓴이 _ 윤원화

 

 

회화가 성립하는 토대에 관심을 갖는 것은 화가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스스로 시각 기호나 장식 패턴 으로 통용되는 보통의 그림과 구별되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특정한 계열로서의 회화를 수행한다고 생 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이 회화라는 특이한 존재를 떠받치는가? 이에 응답하여, 사회적인 것로서 의 미술 제도, 기하학적 또는 물질적인 것로서의 캔버스, 산업적인 것으로서의 물감에 이르기까지, 화 가에 선행하여 회화의 존재를 조건짓는 여러 일반적 조건들이 화가의 탐구 대상으로 호출되어 왔다. 지 난 몇 년간 오희원이 해 왔던 일도 기본적으로 그와 같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탐구하고 재구성 하는 작업을 반복해 왔는데, 이런 접근은 2014년 첫 번째 개인전 ‹White Void – 공백의 반응›에서 처 음으로 완결적인 형식을 갖추었다.

 

 

당시 전시는 두 가지 유형의 작업으로 구성되었다. 하나는 전시물이 놓이지 않은 텅 빈 전시장들의 모 습을 그린 <Blind Site> 연작이고, 다른 하나는 전시가 열리는 경복궁 일대에서 1999년부터 2013년 사 이에 전시공간의 분포 변화를 시각화한 <Moving Track [No.02]>이다. 아직 초기작이지만, 오히려 그 렇기 때문에 이 작업들은 오희원이라는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를테 면 <Blind Site>는 실제로 전시물이 모두 철거된 전시장에 머물면서 눈에 보이는 풍경을 묘사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시물이 설치된 상태의 전시공간을 직접 경험한 후에, 자신의 촉각적인 기억과 사진 기록을 바탕으로 캔버스 위에서 전시물을 지워 없애는 방식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것은 전시장이 전시 물을 잘 보이게 하는 공간으로 정상 작동하는 한에는 관객의 시야에 들어올 일이 없는 풍경이다. 현대 적인 화이트 큐브 전시장은 개념적으로 외부와 차단된 투명한 공간을 지향하기에, 전시공간을 구성하 는 하얀 벽체나 잿빛 바닥은 모두 되도록 비물질적으로 보이도록, 더 정확히 말해 비가시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회피하도록 조성된다. 작가가 캔버스 위에 정교하지만 두텁게 얹은 물감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바로 이 자기 부정적 또는 자기 은닉적인 공간이다. 그것은 회화라는 특이한 가시적 대상이 존재할 수 있는 특이한 비가시적 환경으로서 발견된다.

 

 

당시 작가는 마치 생태학자처럼 자신의 발견을 기록하고 확장했다. 말하자면 그는 회화의 서식처로서 개별 전시공간들이 어떤 모양인지 기록하고, 전시공간들의 군락이 어떤 지역에 어떤 패턴으로 분포하 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추적했다. 하지만 얼핏 객관적이고 무심해 보이는 그 시 선에는 멸종위기종을 기록하는 사람의 애수 같은 것이 어려 있었다. 거의 4년만에 열리는 이번 개인전 ‹Parallel Grounds›를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겨울을 마주한 이의 비애감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이다. 그러니까 여름보다는 겨울에 가깝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으면서 문득 의식하게 되는 청명한 시야가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를 가시적인 것 이면의 어떤 진실을, 또는 단순히 어떤 공허 를 폭로할 기회로 삼지 않는다. 단지 그는 아지랑이가 걷히고 수증기가 얼어붙으면서 생겨나는 풍경의 변화에 집중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반응하고자 한다.

 

 

그것은 무슨 풍경인가? 무엇보다도 그것은 회화의 풍경이다. 당신은 전시장을 거닐면서 회화라는 매체 의 길고 끝없는 황혼에 대해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렇지만 ‹Parallel Grounds›에서 이 풍경은 한 장의 풍경화 또는 역사화로 압축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어슴푸레한 풍경을 관측하는 외부적 시점을 구축하 기보다 그 풍경 속에서 길을 더듬어 찾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그 길은 회화의 풍경 바깥으로 나오는 길 이 아니라 더욱 더 그 풍경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 전시를 이루는 입체적 풍경은 결국 작가의 그런 주관적 궤적이 재구성된 것이다. 그것은 회화의 역사이기 이전에 한 화가의 역사로서, 한눈에 조망되지 않고 하나의 평면 안에 가둘 수 없는 시간적 전개를 공간적으로 펼쳐 놓는다. (이하 생략 )

 

 

** 글의 전문은 전시장에 배치된 소책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윤원화 / 시각문화 연구자. 저서로『1002번째 밤: 2010년대 서울의 미술들』,『문서는 시간을 재/생산할 수 있는가』, 역서로『광학적 미디어』,『기록시스템 1800/190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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