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선: 정지 - 회전 - 구
챕터투(Chapter II)는 손현선의 ‘Standstill - Spin - Sphere’전을 2017년 10월 26일 부터 11월 25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천정 선풍기 (Ceiling Fan) 만큼 원래의 기능적 목적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여타의 상징성이 부여된 가전 제품은 없을 것이다. 대체로 서구식 주거 형태에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영화 또는 각종 매체를 통해 중산층의 거실, 해변가 휴양지 혹은 오래된 도심 호텔 등의 이미지에 등장하며 오랫동안 우리에게 미국의 선진형 주거 형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왔다. 특히, 영화 매체에서의 활용과 연관된 의미의 다양한 변용은 주목할 만한데, 주로 국면 전환이나 주인공의 복잡한 감정 입사, 스토리 전개의 정체 또는 지연을 암시하는 기호로의 활용은 도식화 되어 있을 정도로 빈번하다.
손현선이 자신이 추구하는 회화적 이상을 실현하는 대상으로 천정 선풍기를 선택한 이유는, 기능적 용도의 실현을 위해 일정한 속도로 정해진 구간을 무한 순환하는 팬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궤적과 그 궤적이 지닌 범용성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시각 기관이 지닌 한계는 초당 최대 16 프레임의 인식만을 허용하는데, 이는 허용치 이상의 속도로 움직이는 물체는 대해 우리의 인지기능은 불완전한 정보를 제공함을 뜻한다.
여기서 작가의 '도는 사이 연작 (2015 - 2016)'을 과연 천정 선풍기의 재현(Representation)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시리즈 중 일부 작품은 물체의 외형을 고스란히 드러내지만, 동시에 다른 작품들은 동작의 최고조를 표현한 듯한 회색의 반원 형태만 묘사되어 있다. 앙리 마티스(1869 - 1954)는 '화가의 노트(1908)'라는 컬럼에서 "그림에서 유용하지 않은 모든 부분은 유해하다"라는 주장과 함께, 불필요한 이미지의 묘사와 배치는 작가의 의도를 오독하도록 이끌 위험이 있다고 하였다. 이런 견해에 비추어 볼 때, 일체의 배경이 생략된 정중앙에 위치한 회전하는 물체에 대한 단독 묘사는 과연 어떤 오독을 회피시키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담겼을까 하는 의구심이 일도록 이끈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Like the Moon 연작 (2016 - 2017)'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빛의 투사 방향을 짐작케하는 그림자와 듬성듬성 솟은 돌기만으로는 어떤 사물의 재현인지를 가늠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다분히 의도적인 '예증적 재현 (Illustrative representations)'의 회피를 통해 작가는 구상 회화의 즉물적인 면을 최대한 절제하고, 자신 특유의 회화적 상상력을 확장하기 위한 틀로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천정 선풍기와 레디믹스트콘크리트 (Ready-mixed concrete, 이하 레미콘)의 몸통은 원래 주어진 목적과 속도대로 기능하기에 감상자의 경험에 비춘 재현성의 획득을 포기하였지만, 이는 동시에 작가에게 회전하는 모든 것에 대한 일종의 이데아(Idea)가 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부여하였다.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Cosmos Party : 우리는 우주에 간다(2016)'는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공식화한 전시였다. 레미콘의 투입구 이미지는 제목과도 같이(Like the moon) 우주의 회전에 대한 작가의 막연한 상상, 달의 분화구 등에 투사되어 작가의 의도에 따라 개별 이미지에 무한한 확장성이 부여될 수 있음을 예증하였다.
챕터투에서 10월 26일부터 열리는 ‘Standstill - Spin - Sphere’전은 재현 대상의 선택과 식별, 그리고 회화적 확장성에 대해 끊임 없이 탐구해온 작가의 그간의 연작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선사할 것이다.
손현선 (b. 1987)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조형예술과 전문사를 이수했다. 갤러리 175에서 개인전(2016)을 개최하였고, 두산갤러리(2017), 하이트컬렉션(2016), 신한갤러리 역삼(2016), 성북예술창작터(2015), 교토 나카이갤러리(2013) 등의 그룹전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