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균: Notional Flag #5-B
챕터투 야드 (Chapter II Yard)는 개관전으로 주세균 (Ju Se Kyun, b.1980)의 개인전, <Notional Flag #5 – B>를 5월13일부터 6월 27일까지 성수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공적 규범 체계와 상징이 가진 함의에 대한 의문을 설치, 조각, 드로잉, 비디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풀어오고 있는 작가는, 지난 1월에 챕터투 본관(연남동)에서 <Notional Flag #5 – A> 전을 개최하였다.
이번 개관전은 1월 전시의 연장선이자, 챕터투 야드 공간에 맞게 재해석한 <Notional Flag Series>와 신작인 <Text Jar Series>를 선보인다.
여기 형형색색의 기(flag)가 놓여있다. 퍼레이드에 항시 등장하는 우리에게 친숙한 만국기의 형식을 빌려 전시장 바닥에 서로 면을 맞대고 110개의 기가 놓여있다. 사실, 이 기들은 작가가 직접 염색한 모래, 흑연 가루, 흰색 파우더 등을 일일이 바닥에 세밀하게 뿌리는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것이다. '세밀한 뿌리기'라는 작가의 구도자적 수행은 오직 중력이라는 외력에 의지하여 진행되고, 전시 기간 동안 의도된 원형을 유지한다.
'Notional Flag'이라는 전시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기들은 실재하는 국가의 기가 아니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과 실체를 상징하는 A3 크기의 이미지는 기(flag)의 형식으로 읽히는데, 이는 우리의 인식 체계에 입력되어 있는 국기(national flag)의 구성요소인, 패턴, 문양, 색깔, 외형의 기준을 오롯이 충족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도한 전시의 목적, 즉,존재하지 않는 기를 보여주는 행위와 그와 연계된 연상 작용의 유도는 관람자에 따라 선택적으로 달성된다. 쉽게 말해 기준점이 될 수 있는 국기, 예를 들어 자국의 국기이거나 미디어에 빈번히 등장하는 주요국의 국기에 대한 앎의 유무가 기준점이 되어, 대상이 되는 이미지의 실재 유무를 평가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전체 집단의 원전성 평가를 담보하지는 않는데, 이는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작가가 창조한 기의 이미지들이 무척이나 그럴싸한 외형을 지녔기 때문이다.
한 켠에 쌓여 있는 모래 더미는 새로운 구성 요소로서 이번 전시에 등장한다. 작품의 재료가 설치에 함께 등장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의 기저를 흐르는 논리적 기반과 전시명에 대한 추론을 이끌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부딪히는 수 많은 규범과 정의, 의미는 '실체와 개념' 사이 어디엔가에 기거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 따라서, 작가에게 있어 'Notional'은 언제나 'National'로 전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고, 이는 동시에, 우리가 실체라고 믿었던 기존의 정의와 의미, 상징들은 유사시 전복될 가능성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깃발로 상징되는 하나의 조직과 기관, 그 어떤 형태의 사회적 단체는 시간의 영속성 관점에서 볼 때 "일시적"이다. 마치 작품과 모래더미의 관계가 선후 혹은 종속적 관계가 아닌 시간과 선택의 관점에서 상대적이듯이. 따라서, 전시 기간이 종료된 후 작가가 작품을 붓으로 쓸어내어 모랫덩이에 합치는 행위는 단순히 작품의 소멸을 뜻하기보다는 작품의 진정한 완성이고, 일시적이었던 상태가 보다 영구적인 상태로 옮겨가는 행위, 엔트로피 법칙의 순응으로 해석됨이 옳다.
작가는 깃발과 깃발의 경계선이자 중간지대인 곳에서 "신념"이란 단어를 연상하였다고 한다. 한 국가가 다른 국가와 국경선으로 구분되는 형태, 또는 주권(Sovereignty)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공유하는 모든 배타적인 공동체는 주관적인 신념의 덩어리의 합이라는 관점의 적용에서이다. 국가 차원에서의 이러한 신념은 특정한 지역에서 동일한 역사의 영향권 아래에 있었거나, 특정한 이슈에 대한 유사한 반응의 축적과 총합이 충족될 때 형성된다.
별도의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는 <Text Jar Series>는, 이러한 신념의 기본 단위는 함께 식사하며 동거하는 가정이라는 작가의 해석을 시각화한 것이다. <신념의 호수>와 <신념을 채우다>라는 한글 텍스트의 외형을 응용하여 제작된 작품들은, 다양한 형태의 신념들이 결국 동일한 식기를 매일 공유하며 가족 구성원들의 생존과 직결된 "가정안에서의 식사”라는 행위를 통해 탄생하였고, 모든 형태의 "신념"의 내핵으로 존재한다는 작가의 믿음에서부터 파생되었다.
주세균은 국민대학교에서 입체미술과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고, 도자공예과를 부전공으로 수학하였다. OCI 미술관 개인전을 포함 국립현대미술관, 남서울미술관, 금호미술관, 경기도미술관, 주중 한국문화원, 대만 도자 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기관에서 활발히 작품을 선보여 왔으며,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대영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OCI미술관 등 유수의 기관 컬렉션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