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도: 천 개의 정원

17 August - 23 September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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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ss release

챕터투는 8월 17일부터 9월 23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박이도(Park Ido)의 개인전, 《천 개의 정원(A Thousand Gardens)》을 개최한다. 다양한 매체와 결합한 회화적 시도를 통해 대상의 외형적 본성에 새로운 플롯을 덧입히는 작업에 몰두해 온 박이도는, 이번 전시를 통해 작품 제작과 감상이라는 대척점에 놓인 행위 사이에서 묘사 대상에 대한 자신의 고유한 접근법에 대한 그간의 탐구를 보여준다.

 

"본다는 것은 거리를 두고 소유하는 것"이라는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Ponty, 1908-1961)의 말은 화가의 숙명에 대한 그의 통찰이 간결히 배인 선언문과도 같다. 화가가 무언가를 묘사한다는 행위는 단순히 그 대상의 구현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빛, 온도, 계절, 감정, 시간대 등의 시지각 영역 밖에 머무는 비물질적 요소까지 아우름을 뜻한다. 즉, 하나의 대상을 주제로 승화시키고자 그 외부의 모든 현상을 평면에 구축하는 '있음 직한 현상계'를 창안하는 것이다.

 

휴먼 스케일(Human Scale)을 기반으로 감상자에게 경험적으로 축적된 사물의 보편적 크기 또한 작가의 조형 의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은 자신의 작품에 '단일성(Onement)'이란 제목을 부여하고 감상자에게 1m 이내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했는데, 그럼으로써 자신의 거대한 작품이 관객의 시선을 덮어 분절적 이미지가 아닌 전면이 뿜어내는 숭고함이라는 하나의 현상을 경험하기를 바랐다. 반면, 박이도의 구도는 꽃이라는 대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일반적인 태도를 존중하는데, 연작 (2023)에서 화면 중앙의 좌우로 화려하게 나열된 꽃봉오리들은 우리가 정원을 감상할 때 조경과 통행로의 보편적인 설계 방식에 의해 익숙한 스케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정원을 '소유했던 방식'을 온전히 차용한 작가의 의도는, 부여된 제목과 함께 전작들에 비해 추상성이 농후한 작업들이 자칫 구상의 영역에서 이탈되는 것을 방지하도록 기능한다.

 

단순히 추상성을 배가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이번 전시의 지배적인 미디엄인 밀랍의 재료적 특성이 만들어내는 누적된 레이어들과 그것들의 축적은 화면에 공기, 광량, 습도 등 비가시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며 몽환적인 분위기와 함께 깊이를 더한다. 또한, 평면의 실제 두께는 촉각을 환기시켜 새로운 감흥을 불러오고,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화면에 원근의 효과를 부여한다.

 

'천 개의 정원'이라는 전시 제목은 스튜디오 안에서 펼쳐진 작가의 상상의 결과물들이 세상의 존재하는 어떤 정원에도 대입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친다. 결국 그가 묘사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정원에서 목도한 꽃과 식물들의 모습이 여러 가지 감정으로 분화되어 형성된 각자의 기억이기도 하다. 오래 쳐다본다고 특정화할 수 없고 그래서 계속 동경하며 결국 추상화된 단어로만 기억되는 방식을, 박이도의 밀랍 풍경화는 적당한 거리에서 우리와 다시 대면시킨다.

 

박이도(b.1983)는 프랑스 디종 보자르(Ecole Nationale Supérieure d'Art et de Design de Dijon)에서 조형예술학사를 졸업하고 스트라스부르 아르데코(Haute école des arts du Rhin)에서 조형예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인천아트플랫폼(2020), 모란미술관(2018),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2017),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2017), 보자르(2012) 등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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