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유머: 황학삼, 최선,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
챕터투 야드는 최선, 황학삼,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가 참여하는 ‘블랙유머(Black Humour)’전을 7월 14일부터 8월 12일까지 성수동 전시 공간(서울시 성동구 서울숲4길 16)에서 개최한다.
검은색이 가진 역설적인 가능성은 보통 그것이 충만한 지점에서 불현듯 튀어나온다. 검열 대상 문서에 촘촘히 그어진 검은 라인은 감추어진 사건과 대상자의 추론을 부추기는 시발점이고, 수평선의 짙은 어둠은 일출이 결국 시간문제일 것이라는 신호이며, 검은 상복으로 가득 찬 장지는 상실에 대한 슬픔이 일시적이고 결국은 잊힐 것이라는 묵계이기도 하다. 따라서, 보편적으로 '빛의 부재'이기도 한 검은색은 그 스스로는 ‘무(emptiness)’의 상황 이자 정지된 단계이지만, 언제든지 무언가를 촉발하는 에너지가 은폐되었을 수 있기에 예측 불가능성을 내포하기도 한다.
최선(b.1973)의 검은 그림(2015)은 폐유를 균질하게 캔버스 표면에 발라 완성한 작품이다. 폐유라는 비예술적 재료는 상업적인 가치가 소멸되었고, 재생의 가능성이 차단되어 있으며, 본원적으로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색으로 구성된 일종의 무(無)의 단계에 머무는 물질이다. 시각적으로 동일한 외향을 띄지만 이질적 재료를 사용하여 회화의 기법적 하부구조를 비트는 방식을 통해, 작가는 숭고, 개념, 초월 등 전통적으로 색면회화에 부여된 다양한 수식적 지위들을 경계선으로 한껏 밀어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황학삼(b.1984)의 거칠게 가공된 표면과 뒤틀리고 절명된 듯한 상태의 전신상과 흉부상들은 검은색이 내포하는 상징성과 결합하여 그로테스크하고 기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인체 외형을 따라 굴곡마다 흩뿌려지듯 자리 잡고 있는 흰색의 표피들은 군데군데 표현된 양감에도 불구하고 생동감을 억제하고, 일련의 행위와 이벤트가 오랜 시간이 경과했음을 알려주는 시각적 지표로 기능한다. 어떤 행위가 있었는가에 대한 서사적 심상이 일어나기 전, 이러한 일련의 장치들의 감각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호소는 작품의 형태와 의도된 구상성에 우선적으로 집중하게끔 이끈다.
가브리엘 아세베도 베랄데(b.1976)의 애니메이션인 〈Escenario〉(2004, 3 mins)는 수십 명이 군집한 어두운 야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문의 이벤트를 보여준다. 어린이 한 명 한 명이 차례로 단상에 올라가서 강력한 빛의 쪼임을 받고 일시적으로 혼절하는 상황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은, 글로벌리즘에 순응하도록 미래의 시민들이 획일적으로 길들여지는 방식에 대한 은유로서 해석될 수 있다. 순간의 섬광인 강력한 빛의 점멸은 단상 아래의 어두움을 순간적으로 강조하고 소멸되며, 동시에 길게 드리워지는 어린이들의 검은 그림자는 정신을 잃고 혼절하는 당사자의 동작에 긴장감을 배가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