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cm: 강성은, 송번수, 수잔 송, 윤형근, 정창섭, 정희승, 최선
챕터투는 2024년 5월 9일부터 6월 29일까지 연남동 전시공간에서 국내외 7명의 작가 — 강성은(Kang Seong Eun, b. 1982), 송번수(Song Burn Soo, b. 1943), 수잔 송(Suzanne Song, b. 1974), 윤형근(Yun Hyong Keun, 1928-2007), 정창섭(Chung Chang Sup, 1927-2011), 정희승(Chung Hee Seung, b. 1974), 최선(Choi Sun, b. 1973) — 이 참여하는 그룹전, 《45cm》를 개최한다.
현대미술의 관람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룰은 익히 알려져 있다. “큰 소리로 얘기하지 않기, 사진 촬영은 플래쉬를 터뜨리지 않아야 하고 사전에 허가 받지 않은 영상 촬영 금지, 작품에 손대거나 가까이 접근하지 않기” 등이 대부분의 미술관과 갤러리에서 지켜야 하는 관습화된 규칙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위의 규칙은 작품의 훼손이나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일 뿐 “최적의 작품 감상”에 대한 안내와는 거리가 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최적의 작품 감상법”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 받은 적이 없음에 놀라게 된다. 물론, 평면 작품이 설치되는 높이는 대부분 작품의 중심선을 따라 1.5m 내외인데, 이는 자연히 일반적인 성인의 눈 높이에 호응한다. 보행로의 각종 표지판, 건물 내외의 사인보드 등도 모두 동일하기에, 이러한 설치 방식은 미술에 국한된 특별한 원칙이라기 보다는 인간의 고유한 시각 기관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정형화된 노하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작품의 감상 방법에 대해 찾아보면, 감상하는 본연의 행위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다는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권고들 - 매체와 재료 등을 자세히 탐구, 작가와 시대적 배경에 대해 사전에 지식 확보, 영향을 주고 받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유추 - 로 가득하다. 기실, 콘서트홀 또는 극장의 경우에 빗대 배정된 자리에서 감상하면 되는데 그 이상의 무슨 원칙이 필요한가라는 반론이 제기될 수 있지만, 작가에 의해 선형적으로 설계된 리듬과 서사가 존재하는 예술 매체들과 정적인 평면 회화 작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전시 제목인 “45cm”는 색면추상을 개척한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 -1970)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에 대한 언급에서 기인한다. 45cm(18 inch)와의 거리를 두고 자신의 작품 앞에 서면 화면을 수직으로 가르는 선(Zips)과 색면(Color field)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강력한 시각 작용을 일으킨다고 그는 주장했다. 스스로 오랜 관찰을 통해 이러한 감상 방법으로만 자신이 작품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초월적 숭고함”에 근접할 수 있다고도 믿었다.
전시장을 방문하는 관람객은 작품이 걸린 벽면 가장자리를 제외하고는 식물로 가득찬 전시 공간과 마주하게 된다. 관람을 위해 작품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식물을 피해 좁은 통로로만 지나야하고, 각 작품과의 거리는 반세기도 넘은 뉴먼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다.
뜻 밖에도 우리는 정창섭(Meditation, 연도 미상)의 대형 작품을 꼼꼼히 채우고 있는 한지의 섬세한 표면과 추상 안에 도사린 작은 추상들을 목도한다. 최선(Deep painting, 2024)의 순수추상에서는 가까이서만 느낄 수 있는 옅은 냄새를 통해 밝은 오렌지색이 김치 국물임을 알아채게 되고, 송번수(Possibility 024-DI/DII)의 연작에서는 가시의 수를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파란 배경이 먼 기억속의 아주 맑은날의 하늘과 TV에서만 보던 열대 바다의 색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강성은의 (The Side Wall, 2021) 연작에서는 지금은 없어진 그 어딘가의 좁은 골목을 지나던 리어카와 자전거, 골목 사람들이 남긴 자잘한 삶의 흔적과 같은 세밀한 선들의 군집이 시선을 붙잡고, 윤형근(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1993)의 작품에서는 붓질 이후 며칠은 더 천천히 섬유를 적셔가며 영역을 넓히던 검은 사각형의 숨죽인 집요함을 마주한다. 정희승(Reflection, 2024)의 제주도 숲 사진은 생의 사이클이 지난 잔해들의 정경 앞에서 작가가 느꼈을 봄(spring)에 대한 의심과 막막함을 이해하게 되고, 윈도우 갤러리에 걸린 엽서 크기의 수잔송 드로잉(Float, Flow, 2024)은 기꺼이 유리에 코를 댈 용기가 있는 사람에게만 파란 파동이 작가가 일일이 찍은 모래알 크기의 점들 임을 고백한다.
이번 전시는 6월 29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