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환: 콘크리트 아일랜드
챕터투는 조정환의 개인전 《콘크리트 아일랜드(Concrete Island)》를 2024년 7월 12일부터 8월 17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난개발된 도시에서의 삶에 대한 자전적인 소회를 표현해 온 조정환은 이번 전시에서 챕터투 레지던시(Chapter II Residency) 입주 기간(2023-24) 동안 한층 심화시킨, 대도시와 개인간의 구조적 갈등 및 그 저변에 깔린 공통된 의식의 흐름에 대한 일련의 서사를 선보인다.
“비주얼 랭귀지(Visual Language)”의 뜻과 어원은 심오한 논문의 주제가 될 수 있을 정도로 그 함의와 매체별 용례 등이 비평의 대상이다. 동시에, 그 용어가 가지는 포괄성과 유연성 때문에 전시 보도자료, 광고 등에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기에 상투적이기도 하다. 현대미술에 있어 이 표현이 빈번히 등장하는 이유의 저변에는, 미술 또한 여타의 예술 장르와 마찬가지로 “작가와 관객, 제작과 감상, 생성과 비평”이라는 함수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계 내의 소통을 담당하는 시지각 기관과 그것을 통해 전달되는 미술작품의 정보가 우리의 사고체계에서 처리되고 저장되는 방식은, 언어의 기능 및 그 작동 방식과 유사하다는 전제가 내포되어 있다.
조정환의 회화는 르포르타주(Reportage) 성격을 지닌다. 대도시에서 페인터로 사는 삶의 단면과 일상, 특히 팬데믹 기간에 공동체의 안위를 위해 개인에 부여된 각종 지침과 제약이 최대치에 달했을 때 비로소 실감한 기본적인 자유의 유보와 사회의 계층 구조는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전시 제목인 “콘크리트 아일랜드”는 팬데믹 전후 고향인 부산과 챕터투 레지던시 기간에도 이어진 회화 작업들의 주제를 충실히 대변한다.
주로 등장인물의 배경에 드리워진 회색의 구조물들은, 전작에서 자주 보이던 “묘비석”의 심층 확장된 형태이다. 이러한 이미지들이 고단한 삶의 순환에서의 종착점을 은유했다면, 신작에서는 도시를 가득 채운 빌딩과 아파트, 계층을 가르는 상징적 구조물로 치환되었다. 이러한 도시의 삶이 선택의 결과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이고, 별다른 선택지는 없다는 작가의 경험칙은 “아일랜드”라는 제목으로 묵직하게 다가온다.
마치, 스스로 정한 특정한 규칙에 의해 팔레트를 통제한 것처럼 색의 사용은 적황색, 검은색, 드물게 사용된 청색 계열로 국한된다. 가장 빈번하게 쓰인 붉은색과 노란색은 주로 저녁 무렵의 하늘 또는 해골로 묘사된 등장인물 앞에 놓인 모닥불 화염 등을 묘사하는데 치중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색이 가진 발산과 팽창의 성질을 작가는 수축과 침잠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능숙하게 다루어낸다. 붉은색으로 터질 듯이 가득 찬 하늘은 일몰이 함유한 다양한 의미를 도시인의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하고, 화면 하단부에 자주 등장하는 모닥불과 빛의 잔재는 도시 안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한정적인 공간과 자유, 재화의 한껏을 나타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구상 회화의 장르적 특성 중 하나가 보다 광범위한 대상의 공감과 다양한 심상의 촉발이라는 점에서, 조정환의 시각 언어(Visual Language)는 직접적이고 강렬하다. 치밀하게 계산된 화면과 색의 사용, 자신의 분신으로 보이는 인물의 계산된 등장은, 작가가 때때로 느꼈음직한 복합적인 감정을 작품으로 승화시켜 보다 구체화한다. 과장되고 극적인 화면 구도, 황량하고 비현실적인 풍경은 현대인의 삶이 가진 부조리한 단면과 만나는 지점에서 순간 증폭되며 의외의 설득력을 가진다.
조정환(b.1982)은 동의대학교에서 건축학과, 부산대학교에서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부산 프랑스문화원 아트스페이스(2019), 갤러리 李(이)(2015), 갤러리 뭉클(2015)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고,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2023), 신촌문화발전소(2023), 챕터투(2023), 부산시립미술관(2023), 후쿠오카 아시아미술관(2020), 디오티 미술관(2020)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