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연: 수집자

10 October - 23 November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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챕터투는 김수연의 개인전 《Catcher(수집자)》를 2024년 10월 10일부터 11월 23일까지 연남동 전시 공간에서 개최한다. 날씨로 표상되는 시간을 물질로 치환시켜 ‘날씨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2023년 챕터투 레지던시(Chapter II Residency) 입주 기간 동안 수집한 사계절의 온도와 습도를 캔버스로 옮겨와 선보인다.

 

김수연(b.1986)은 국민대학교 미술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갤러리2 중선농원(2024), P21(2022), 갤러리2(2021, 2018, 2017), SH Art Project(2019)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고, 주홍콩한국문화원(2024), 챕터투(2023), 에스더 쉬퍼 베를린/서울(2023), 아트센터 화이트블럭(2023), 울산시립미술관(2022), 뮤지엄헤드(2021), OCI미술관(2020),일민미술관(2019), 부산시립미술관(2018)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 참여했다.

 


 

 

김수연 작가노트 (2024)

 

본인은 지난 10여 년간 식물도감, 백과사전, 춘화집 등에서 발췌한 텍스트를 입체물로 제작한 뒤 이를 정물화의 형식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해왔다. 그 이후로 진행한 날씨 연작을 포함하여 그동안 존재했으나 사라져 버린 것,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소재로 삼고 작업을 해왔다. 챕터투 레지던시에 입주해서 작업에서 <무엇을> 그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주안점을 두고 실험을 시작했다.

 

캔버스 바탕체의 물질은 아크릴 미디엄으로 물감의 보조제 역할이지만 단독으로 사용해 온도, 습도에 따라 비의도적인 방식으로 흔적을 만든다. 실내와 실외의 온도, 습도 차이가 클수록 바탕체의 표면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흔적이 남게 된다. 2023년 11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약 1년간 보이지 않는 날씨의 요소로 사계절의 온도, 습도를 기록했다. 실내, 실외의 온도, 습도가 급격히 차이 나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특히 한파, 한여름의 폭염 기간에는 물질의 표면이 드라마틱한 균열이 생겨 마치 상처와도 같은 흔적이 생긴다.

 

작업 방식은 그날의 인상 깊었던 하늘의 색을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여 이미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크롭하여 하늘의 색을 미디엄과 섞어 캔버스 8호 크기에 340~380 ML 양의 미디엄을 붓는다. 그리고서 바로 그 시각 실내와 실외의 온도, 습도를 확인하여 기록하고, 미디엄에 들어간 아크릴 물감의 색이름과 양도 함께 기록하여 저장한다.

 

이 시리즈는 화가로서 화면 안에 특정한 대상을 표현하기 위한 배경으로서 재료 실험을 진행하다 이루어졌다. 균질하고 매끈한 화면이 당최 나오질 않아 실패에 가까운 표면들을 그림을 위해 사포질을 하고 미디엄을 덧칠하는 행위는 그리고자 하는 창작의 충동을 억누르게 만들고 작품 제작 과정의 호흡을 기약 없이 길게 만들었다.

 

그러다 문득 쌓인 실패된 바탕체 그림들을 바라보다 실패라고 규정한 흔적 자체가 비의도적인 방식으로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 이전에 실패된 그림들이지만 의도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날씨의 요소(온도, 습도)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들 자체에 주목하여 시리즈로 기록하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매일의 날씨를 물질을 통해 비물질의 영역으로 가시화한다. 실험을 통해 일 년 중 실내와 실외의 온도, 습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순간은 마주하지 못했다. 그나마 균질하게 나오는 표면의 상태는 150여 점 중 5점도 채 되지 않았다. 완벽에 가까운 상태-순간은 결코 없었다.

 

실험을 진행하다 보니 일 년 동안 그 어떤 하루도 똑같게 기록된 흔적-모양은 없었다. (바람 흔적 채집을 포함하여) 매일 똑같은 나날들은 실상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본인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흔히 “매일 같은 날이 반복된다”고 푸념하곤 한다. 날짜와 시간은 매일의 다른 차이에 무감각해지도록 만드는 인위적인 개념이지만 하루에도 역사가 있다.

 

날짜와 시간이란 인공적인 개념에 익숙해져 매일을 별다를 것 없는 하루라고 생각해도 어제와 오늘은 다른 날이다. 하루도 똑같은 모양을 가지지 않은 흔적들을 바라보며 더딜 순 있어도 나 자신도(우리 모두는) 매일 변화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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