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우혁: 스포트라이트 시리즈 I : 프롬나드
연트럴파크가 완공되며 연남동이 한창 핫하다고 소문나던 그 해, 지금은 옆 건물로 이전한 행운의 마트(Lucky Supermarket)가 있던 566-55 번지에 대안공간과 레지던스가 들어섰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무척이나 열심이던 회사와 회장님은 작가 창작열의 심폐 소생에도 관심을 쏟았고, 비가 들이치던 압구정 아파트 상가 건물 지하에서 고군분투하던 챕터투(Chapter II)는 두 살이 되던 해에 그렇게 새 집으로 이사했다.
한 겨울 구피가 얼어나가고 카페와 공동으로 쓰는 싱크대는 벗겨내기 힘든 기름 얼룩이 켜켜이 쌓여갔지만, 가성비로 소문난 옆 방어 횟집엔 매일 긴 대기 줄이, 챕터투엔 작가들의 열기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들로 가득했다. 커피 포터필터 터는 소리에 자꾸만 멈칫 멈칫하던 입주 작가들은 늦게 화실을 나서다가 툭하면 건물 보안 시스템의 테스터를 자임했고, 거리를 퍼져나가던 사이렌 소리는 해외 각지에서 모여드는 여행객들의 캐리어 끄는 소리와 라임을 맞추며 묘한 생동감을 더했다.
챕터투 레지던시를 마치자마자 독일로 영구 이주한 빈우혁 작가는, 그 시절 그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하여 베를린 숲속을 거닐며 완성한 연작 8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자신에게 위안과 평온한 감정을 주던 숲의 정경이 우리에게도 묘약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득 담아, 미술이 가진 진정한 힘을 믿는 이들에게 일찍 보내는 크리스마스 카드처럼.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